생각해 보자. 눈앞에서 코뿔소가 나를 항해 달려온다면 기분이 어떨까? 대단히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깨닫고 엄청난 공포심을 느낄 것이다. 그나마 잘 보이기라도 하면 괜찮지, 저게 코뿔소인지 아닌지 애매하다면 어떨까?
경제, 재테크 분야에서 많이 사용되는 '회색 코뿔소'라는 말이 있다.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을 때 쓰는 '검은 백조'라는 말과는 달리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쉽게 간과하는 위협요인을 뜻하는 단어다. 코뿔소가 회색이면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흰색이나 검은색 또는 빨간색이라면 잘 보이니 저 멀리 보이면 바로 도망갈 수 있을 텐데 회색은 그렇지 않다. 저게 코뿔소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하는 동안 어느새 코뿔소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내 앞에 와 있다.
인플레이션이 바로 이렇다. 2022년 봄, 미국에서 물가상승률이 심상찮다는 소식이 처음 들려오기 시작할 때 "설마, 뭐 위험하겠어? 미국이 알아서 잘하겠지, 금리 살짝 올려서 물가 잡겠지'라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여름이 되면서 바로 코앞에 코뿔소가 보였다. 이때부터 모두들 허둥지둥하면서 인플레이션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2022년 말까지 경제 상황이 기존의 저금리에서 인플레이션과 고금리로 바뀌는 과도기였다.
우리나라는 20년, 미국은 40년 만에 맞이하는 인플레이션의 시대. 물가도 금리도 계속 상승 중이고, 이것이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재테크에 관심을 가지고 시작해 보려 해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아니, 재테크를 하는 것 자체가 맞는지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주식시장은 계속 하락하고, 부동산은 폭락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 투자 상품으로 각광받던 비트코인등의 암호화폐 역시 어떤 거래소가 폐쇄되어 투자자들이 손해를 봤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어느 심리학책을 보니 사람은 힘든 상황을 경험할 때 기존에 겪었던 가장 힘든 상황과 비교한다고 한다. 기존에 500의 고통을 겪었다면 지금의 고통이 100인 경우 '그래도 그때보다는 덜 고통스럽다'라고 위안을 삼는다는 뜻이다.
지금의 인플레이션 상황이 바로 재테크에 있어 '가장 힘든 순간'이다. 주식, 부동산, 코인 등 우리가 일반적으로 재테크라 부르는 모든 것에서 손해가 발생하고 있다. 직장인의 비상자금 통로인 마이너스 통장 이자율이 8%인 세상이다. 부동산 담보대출을 받았다면 기존에 비해 두 배의 이자를 부담해야 한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나가야 할 돈이 많아진다. 가만히 있어도 지갑이 알아서(?) 얇아지고 있는 시대, 재테크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선불리 잘못 뛰어들면 갖고 있는 것조차 모두 다 잃어버릴 것 같은 시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투자의 옷깃을 여며서는 안 된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비단 그렇지 않다고 해도 실질 소득은 줄어드는 상황에서 소득이 줄어드니 투자도 줄이자 혹은 투자는 잠시 멈추자 해서는 더 큰 마이너스만 떠안을 뿐이다. 조금이라도 투자를 이어가야 줄어든 만큼의 소득을 상쇄할 수 있다. 눈앞의 위험을 피하고자 더 큰 위험을 맞닥뜨려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투자는 계속되어야 한다.